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의 후임에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 고법 판사를 지명했다. 공화당은 상원 인준절차를 오는 11월3일 대선 이전에 마치겠다는 목표지만, 민주당은 대선 이후로 인준 절차를 미룰 것을 요구하고 있어 여·야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배럿 판사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비교할 수 없는 업적과 우뚝 솟은 지성, 훌륭한 자격, 헌법에 대한 충성심을 지닌 여성”이라며 배럿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그는 “상원 법사위가 정확한 날짜를 정하겠지만 (인사청문회가 다음달) 12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 달안에 인사청문회를 끝내 선거 전 표결까지 마치겠다는 것이다.
배럿이 대법관이 될 경우 미 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 절대 우위로 바뀐다. 미국 대법관이 종신직이고 배럿의 나이가 48세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 대법원의 보수 우위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배럿이 취임하면 역대 5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1991년 43세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이래 두 번째로 젊은 대법관이 탄생하는 것이 된다.
배럿은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의 헌법을 사랑한다”며 “대법관 지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는 법률을 적혀 있는 대로 적용해야 한다”며 “판사는 정책입안자가 아니다”고 보수적 법률해석을 강조했다. 그는 또 전임인 진보성향의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해서도 “그녀는 유리천장을 깼을 뿐만 아니라 때려 부쉈다”며 “그녀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고, 그녀의 공직 생활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라고 했다.
배럿은 낙태 반대론자이면서 총기소유를 옹호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럿은 미국판 전국민 의료보험인 이른바 ‘오바마케어’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2012년 합헌 판결을 내리린데 대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판한 적도 있다. 로버츠 대법관은 보수성향이지만 오바마케어 등 진보 이슈에도 가끔 찬성표를 던져, 미 대법원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배럿이 인준될 경우 미 대법원의 보수화는 한층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1972년 태어난 배럿은 로드스 컬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노터데임 로스쿨을 수석졸업했다. 노터데임 법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2006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올해의 교내 법학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수 성향의 고(故)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법률 서기를 지내기도 했다.
배럿은 아이티에서 입양한 2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막내 아이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지명식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나와, 자신이 낙태를 반대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란 점을 분명히 했다.
CNN은 “민주당과 진보층은 배럿이 낙태 권리를 후퇴시키고 오바마케어를 무효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인준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상원은 미국 국민이 다음 대통령과 의회를 선택할 때까지 이 공석에 대해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지명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인준에 반대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인사 청문회를 하는 상원 의석은 공화당 53석, 무소속을 포함한 민주당 47석이다. 공화당에서 상원 의원 2명이 대선 전 표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나머지 51명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자력으로 인준안 통과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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