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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 다신 없어야죠”…9·11 때 구조대원들에 식료품점 통째로 내준 윤건수씨 - 한겨레

세계무역센터 근처에서 장사하다 테러 목격
대피 않고 소방관 등 구조대에 물·맥주 등 제공
“선행 입소문에 후원금…가게도 더 잘돼”
주변 상인이 찍은 테러 참상 사진첩 간직
9·11 테러 당시 구조대원들에게 자신의 식료품점을 털어서 물, 음식 등을 제공한 윤건수(64·왼쪽)씨가 뉴욕 맨해튼의 가게 ‘모건스 마켓’ 앞에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9·11 테러 당시 구조대원들에게 자신의 식료품점을 털어서 물, 음식 등을 제공한 윤건수(64·왼쪽)씨가 뉴욕 맨해튼의 가게 ‘모건스 마켓’ 앞에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매년 9·11 테러 기념일이면 남다른 감회에 빠지는 한인이 있다. 1984년부터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스트리트에서 식품점 ‘모건스 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윤건수(64)씨다. 그는 테러 당시 구조에 지친 소방관, 경찰관들에게 가게를 다 털어 물과 맥주, 식품 등을 제공해 뉴욕 인근은 물론이고 미 전역에 알려졌다. 윤씨의 가게는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 테러범이 두 대의 여객기로 들이받아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에서 북쪽으로 일곱 블럭, 약 600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날 화요일 아침에 가게에 앉아 있는데 동생이 와서 ‘세계무역센터를 비행기가 들이받았다’고 했어요. 놀라서 밖에 나가보니 건물(세계무역센터 노스타워)이 구멍이 뻥 뚫린채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처음엔 뉴욕 상공을 거의 매일 아침 떠다니는 방송사 헬기가 부딪친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두번째 비행기가 사우스타워에 충돌하는 걸 목격했어요.” 11일 가게에서 만난 윤씨는 20년 전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우스타워가 한 시간도 안 돼서 우르르 무너지는 걸 목격했죠. 마치 연쇄 폭발이 일어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내려앉았어요.” 사우스타워(오전 9시59분)에 이어 노스타워(10시28분)도 무너졌다. 일대가 온통 새하얀 먼지로 뒤덮였다. 경찰은 사우스타워 붕괴 직후 주변을 봉쇄하고 가게들에도 모두 셔터를 내리고 대피하라고 했다. 하지만 윤씨는 24시간 운영하는 가게여서 셔터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직원들을 내보내고 한인 4명이 남아서 가게를 지키기로 했다. 전기도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그러다 윤씨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순간을 맞았다. “지하에 촛불을 켜고 모여있다가 밖으로 나갔더니, 흰 먼지를 뒤집어쓴 소방관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닦을 수 있도록 직원더러 종이타월과 물을 빨리 갖다 주라고 했어요.” 윤씨의 가게는 당시 통제 구역의 끝자락에 자리해, 인근 보스턴 등지에서 급파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위치였다. 4시간 근무, 2시간 휴식으로 순환 근무하는 소방관들은 그늘이 있는 길바닥에 눕는 등 지친 몸을 달랬다. 윤씨는 소방관들에게 “어차피 정전이 돼서 우리 냉장고를 다 비워야 하니, 원하는 것은 다 가져다 드시라”고 했다. 그때부터 윤씨 가게는 며칠 동안 소방대원과 경찰의 무료 쉼터가 됐다. 집에 가있던 윤씨의 다른 직원들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튿날부터 나와서 24시간 교대하면서 구조 인력에게 물, 맥주, 얼음, 음식, 담배 등을 제공했다. 씻을 수 있는 지하실 공간도 내줬고, 여성 대원들에게는 화장실을 제공했다. 테러 이틀 뒤에 구세군의 구호품 부스가 가게 앞에 차려졌고, 윤씨는 테러 6일 뒤인 그 다음주 월요일에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며칠을 더 가게에 머물며 대원들을 도왔다. 이 소식은 지역 언론매체를 통해 곧바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발전기 대여업을 하던 다른 상인은 윤씨에게 무상으로 발전기를 빌려줬다. 멀리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윤씨에게 감사의 편지와 함께 후원금도 들어왔다. 윤씨가 당시 구조대원 등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식료품은 나중에 추산해보니 약 3만달러어치였다고 한다. 윤씨는 테러 보상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보험사에서 이듬해에 이보다 많은 3만5000달러를 보상해줬다. ‘9·11의 또다른 영웅’으로 알려져, 윤씨는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과도 더 가까워져 영업에도 도움을 받았다.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더 잘 됐다. 2002년에는 한 소방관이 테러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윤씨의 가게에 찾아와 “그때 너무 고마웠다”며 돈을 주려고 하기에 손사레를 친 적도 있다. 그는 2003년에는 뉴욕 경찰 모임에서 감사패도 받았다.
윤건수씨가 뉴욕 자신의 식료품점 지하에서 9·11 당시를 촬영한 사진들을 꺼내보여주고 있다. 주변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지인이 준 것이라고 한다.
윤건수씨가 뉴욕 자신의 식료품점 지하에서 9·11 당시를 촬영한 사진들을 꺼내보여주고 있다. 주변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지인이 준 것이라고 한다.
윤씨는 9·11 테러 당일을 생각하면 “어디서도 못 맡아본 매콤한, 기분 나쁜 냄새”가 떠오른다고 했다. 당시 소방대원들 또한 자신에게 고통을 호소했다는 테러의 냄새다. 윤씨는 그러면서, 사고 당시를 담은 사진 80여장이 들어있는 사진첩을 꺼내보여줬다. 근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파키스탄 출신 친구가 촬영해서 자신에게 준 것이라고 했다. 쌍둥이 빌딩에서 화염이 피어오르는 모습, 하얗게 덮인 맨해튼 거리, 길바닥에 널부러진 비행기 잔해 등이 20년 전의 참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윤씨는 당시 주변에서 일하던 상인들 가운데 건물 붕괴로 인한 독성 물질로 암에 걸린 이들이 많다는 얘기도 전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건수씨의 사진첩에 있는 9·11 테러 당시의 사진.
윤건수씨의 사진첩에 있는 9·11 테러 당시의 사진.
9·11 테러 당시의 모습. 윤건수씨는 당시 사진 80여장을 보관하다고 있다.
9·11 테러 당시의 모습. 윤건수씨는 당시 사진 80여장을 보관하다고 있다.
윤건수씨의 사진첩에 있는, 9·11 테러 당시 비행기의 잔해를 촬영한 사진.
윤건수씨의 사진첩에 있는, 9·11 테러 당시 비행기의 잔해를 촬영한 사진.
글·사진 뉴욕/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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