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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다시 핑크빛 바람이 분다 : 미국·중남미 : 국제 : 뉴스 - 한겨레

멕시코·아르헨 등 이어 페루 대선도 좌파 당선
칠레·브라질 등 대선도 좌파 승리 가능성 높아

우파정권들 대처 부실…성장률 -7% 꺾이기도
11개국서 좌파 집권 2000년대 분홍물결 재소환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21일 리마 대통령궁에 도착해 프란치스코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을 만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리마/AFP 연합뉴스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21일 리마 대통령궁에 도착해 프란치스코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을 만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리마/AFP 연합뉴스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다시 한번 ‘분홍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지난주 페루 대선에서 사회주의 계열 후보인 페드로 카스티요의 당선이 확정됨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이 다시 왼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200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기존 ‘붉은’ 좌파와 대비되는 온건한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이 잇따라 집권하며 ‘분홍 물결’(핑크 타이드)을 이뤘는데, 이런 현상이 재현될 전망이다. 실제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때 ‘실패’의 오명을 쓰고 퇴조했던 좌파 정치는 최근 몇년 사이 재기의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완연하다. 2018년 멕시코에서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중도 좌파 정부를 열었다. 2019년엔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자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좌파 정부를 복원했다. 지난해 10월 볼리비아 대선에서는 좌파 후보인 루이스 아르세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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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이번엔 페루에서 카스티요가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2011~2016년 집권) 이후 5년 만에 좌파 정부를 열며, 라틴 아메리카에 분홍빛을 보탠 것이다. 카스티요는 주요 광산 수익에 대해 세금을 올려 의료·교육 등 복지재정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쓰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페루는 구리와 금, 은, 납, 아연 등 광물자원의 주요 생산국으로, 이들 부문은 페루 국내총생산(GDP)의 10%, 법인세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집권 시절(1990~2000년) 신자유주의 기반 위에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이런 흐름에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치인들은 크게 고무돼 있다. 이번 페루 대선에선 심지어 개표 결과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을 때부터, 서로 카스티요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며 축하하는 등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성급하게 카스티요를 “대통령 당선자”라고 불러, 페루 정부의 항의까지 받았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이 좌파 일변도만은 아니다. 2019년 11월 우루과이 대선에선 중도우파 야당 후보 루이스 라카예 포우가 승리해, 15년 만에 우파 정부를 수립했고, 지난 4월 에콰도르 대선에서도 우파연합 후보인 기예르모 라소가 당선되는 등 우파 정치권도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라틴 아메리카 정치 지형의 균형추는 왼쪽으로 더 기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내년까지 칠레 대선(오는 11월)과 콜롬비아 대선(내년 5월), 브라질 대선(내년 10월) 등 대세를 가름할 중요한 선거가 예고돼 있는데, 현 정국의 흐름으로는 좌파의 승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칠레에서는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사회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겪는 등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우파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가 바닥이다. 지난 5월 개헌안을 논의하기 위한 제헌의회 선거에서도 좌파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대거 당선됐다. 이날 동시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수도 산티아고의 시장에 공산당 후보가 당선되는 등 좌파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연말 국민투표로 확정될 헌법안에는 국민의 사회권과 노동권, 경제적 민주화 등 사회주의적 의제가 많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원주민 전통 의상을 입은 엘리사 롱콘(정면 가운데)이 지난 4일(현지시각) 칠레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뒤 발언하고 있다. 산티아고/AFP 연합뉴스
원주민 전통 의상을 입은 엘리사 롱콘(정면 가운데)이 지난 4일(현지시각) 칠레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뒤 발언하고 있다. 산티아고/AFP 연합뉴스
콜롬비아에서는 이반 두케 대통령의 우파 정부가 최근 섣부른 세제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세부담 증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이를 철회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도 폭력적인 강제 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해 국제 여론의 손가락질까지 받았다. 현재 정국 분위기가 내년 5월 대선까지 이어지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은 코로나19 사태 등을 겪으며 자이르 보우소나루 극우 정권에 대한 국민 반감이 극에 이른 지 오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노 마스크’를 선동하고 가짜 치료제 정보를 유포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의회 국정조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전국적인 보우소나루 탄핵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그동안 부패 혐의로 정치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로 대선 재출마의 길이 열렸다. 현지에서는 룰라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경우 재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46%의 지지율을 얻어 보우소나루 대통령(25%)을 크게 앞섰다.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분홍 물결을 소환할 만하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브라질의 룰라,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등 좌파 정치인이 잇따라 집권했다. 분홍 물결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9년의 경우 좌파가 11개 나라에서 집권했고, 여기에 사는 인구는 3억5천만명으로 당시 라틴 아메리카 전체 인구 5억4천만명의 약 3분의 2에 달했다. 당시 이들의 집권은 1990년대 작은 정부, 민영화, 긴축재정 등 신자유주의 처방이 경제위기와 빈부격차 확대를 불러온 암울한 상황과 맞닿아 있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좌파의 큰 정부, 복지 확충 약속에 기대를 건 것이다. 당시 좌파 정치는 때맞춰 불어온 중국의 원자재 수요 급증이란 훈풍으로 구리, 아연 등 광물자원과 옥수수, 밀 등 농산물들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실제 2003년부터 11년 동안 분홍 물결의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연평균 4~5%의 견실한 성장을 보였고, 빈곤율은 45%에서 28%로 줄어들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원자재 호황 국면이 막을 내리고 일부 실정과 부패 의혹이 부각되면서, 분홍 물결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듯했다.
2000년대 분홍 물결의 기수 우고 차베스(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2006년 11월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의 다리 준공식에 나란히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카라카스/AFP 연합
2000년대 분홍 물결의 기수 우고 차베스(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2006년 11월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의 다리 준공식에 나란히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카라카스/AFP 연합
그러나 몇년도 안 돼 ‘좌향좌’의 복권 조짐이 보이면서 ‘분홍 물결 2탄’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반전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자가 폭증하고 경기후퇴로 실업자와 빈곤층이 급증하자, 집권 우파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좌파의 ‘큰 정부, 복지 확충’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페루 산마르코스 대학의 미겔 로드리게스 마케이 교수는 이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완전한 폭풍이 분 것”이라고 표현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다른 어떤 곳보다 코로나19 피해가 컸다. 확진자 수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3개 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들었고, 페루는 지난달 누적 사망자가 18만명을 넘어서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경제적 타격도 세계 최악 수준이다. 지난해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는 세계 평균 -3% 성장보다 훨씬 열악한 -7% 성장을 기록했다. 이번에 카스티요가 대선에서 승리한 페루의 경우 무려 -11% 성장이라는 최악의 경기후퇴를 기록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 나라의 팬데믹 상황이 심각한 탓에 강력한 통행제한 등 방역 조처가 내려졌고,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16% 줄어들어, 감소폭이 전세계 평균의 2배나 됐다. 또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가 관광에 크게 의존하고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많다는 점, 정부의 코로나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됐다는 점 등도 원인으로 꼽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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